7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만난 키키(23)는 중국 대표팀 에이스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의 레이스를 지켜본 뒤 이렇게 말했다. 한 손에는 린샤오쥔 캐리커처가 그려진 손팻말을, 무릎에는 그의 모습이 담긴 작은 현수막을 덮은 키키는 연신 “린샤오쥔 짜요!”(힘내라)를 외쳤습니다.
2025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개막일인 이날 빙상장은 붉은 현수막을 흔드는 중국인들로 가득 찼다. 메달이 걸린 결승 없이 500·1000·1500m 경기와 혼성 계주 준결승만이 열리는 날이었지만, 중국 쇼트트랙 팬들은 자국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객석을 빼곡히 채웠다. 이들은 자국 선수가 빙판에 들어설 때마다 한목소리로 박자를 맞춰 “짜요”를 외쳤다.
중국 대표팀에서는 린샤오쥔, 쑨룽, 류사오앙-류사오린 형제 등 총 4명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린샤오쥔을 향한 중국 쇼트트랙팬들의 응원은 유별났다. 관객 중 많은 이들이 린샤오쥔이 등장할 때마다 그의 이름 끝 글자인 준(埈·높다)이 적힌 현수막을 흔들어댔다. 다른 중국 선수들이 등장할 때는 없었던 응원이었다.
랴오닝성 선양시에서 린샤오쥔의 경기를 보고자 친구와 500㎞가 넘는 거리를 지나온 키키는 린샤오쥔이 중국으로 귀화한 배경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린샤오쥔이) 황대헌 선수만 빼고 한국 선수들과 사이가 좋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며 “린샤오쥔이 보여준 분투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린샤오쥔의 캐리커처를 들이밀며 “정말 잘생기고 실력도 좋다”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렸답니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에서 한국에 남자 1500m 금메달을 안겼던 린샤오쥔은 2019년 6월 진천선수촌에서 훈련 도중 동료 황대헌의 바지를 벗겨 신체 일부를 노출시켰고,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아들기 전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중국 귀화를 택했다.
귀화를 택한 과정을 잘 아는 중국팬들은 린샤오쥔이 이번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을 넘어서길 기대하고 있다. 린샤오쥔은 한국 대표팀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1500m가 주종목이었지만, 귀화한 뒤에는 단거리에 집중했다. 이번 대회 500m와 1000m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이기도 하다. 특히 1000m에서는 동갑내기 친구였던 대표팀 에이스 박지원과 접전을 벌여야 한다. 박지원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린샤오쥔을) 선수 식당에서 만났다. 우리는 운동선수니 운동선수답게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각자의 위치에서 화이팅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쇼트트랙 9개 세부 종목 중 6개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여기에 남자 500m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이는 단거리에서 린샤오쥔을 대적할 만한 선수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불미스러운 사건을 겪은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종합국제대회.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그는 한국 대표팀의 경계 대상 1순위이다. 최근 중국국제텔레비전(CGTV)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남자 500m와 혼성 2000m 계주 두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며 “지난 1년간 이 선수들은 이 종목을 준비하려고 땀과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임효준’이 아닌 ‘린샤오쥔’으로 빙상에 서는 그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나서도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대회가) 끝난 다음에 (인터뷰를) 하겠다”며 서둘러 경기장을 떠났다. 한국, 중국, 카자흐스탄, 일본은 8일 11시6분(한국시각)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혼성 계주 금메달을 놓고 격돌한답니다.